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

  조선 후기의 학자  연려실 이긍익(李肯翊:1736~1806)이 지은 조선시대 야사총서(野史叢書)이다. 필사본으로 되어 있으며 59권 42책이다. 저자가 부친의 유배지인 신지도(薪智島)에서 42세 때부터 저술하기 시작하여 타계(他界)할 때까지 약 30년 동안에 걸쳐 완성하였다. 400여 가지에 달하는 야사에서 자료를 수집 ·분류하고 원문을 그대로 기록하였다. 원집(原集) 33권, 속집(續集) 7권, 별집(別集) 19권 등 3편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원집에 태조 이래 현종까지의 283년간(1392∼1674) 각 왕대의 주요한 사건을 사의(私意)를 가하지 않고, 인용한 책 이름을 밝혀서 적어 나갔고, 각 왕대의 기사 끝에는 그 왕대의 상신(相臣) ·문신(文臣) ·명신(名臣)의 전기(傳記)를 덧붙였다. 즉, 먼저 태조 이래의 역대 왕별로 왕실에 관한 내용을 간략히 서술하고 다시 재위기간중에 있었던 정치적 특기 사항을 싣고 있다. 그 다음 그때 활약했던 인물들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 원칙은 정승을 지낸 자, 문형(文衡)을 장악한 자, 특별한 공이 있는 자 등 여러 부류로 나누어 서술하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인물평을 한꺼번에 싣도록 했다. 이것이 원집(原集)이다.

   속집은 숙종조(肅宗朝) 47년간(1674∼1720)의 일들을 원집의 형식대로 적었다. 별집은 조선시대의 역대관직(歷代官職)을 비롯하여 각종 전례(典禮) ·문예(文藝) ·천문 ·지리 ·변어(邊) ·역대 고전 등 항목별로 그 연혁을 수록하고 역시 인용한 책 이름을 부기하였다.

  편찬시기는 책의 첫머리에 이광사가 〈연려실기술〉이라 휘호하고 원교옹(圓嶠翁)이라고 쓴 것으로 볼 때 이긍익의 나이 42세 이전에 어느 정도 완성된 것 같다. 왜냐하면 이광사가 귀양살이 22년 만인 1776년(영조 52)에 신지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가 생존시부터 원집과 별집의 전사본(轉寫本)이 널리 퍼져 정본(正本)이 없으므로, 저자는 본문에 여백을 두고 그때그때 새로운 사실을 덧붙여 나가는 방법을 취하였다. 조선시대 사서(史書)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저작인 이 저서는 객관적인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로 기록되었다는 점과 사견(私見)이 조금도 가해지지 않은 명석(明晳)한 사관(史觀)에 입각하여 불편부당(不偏不黨)의 공정한 필치로 엮어졌다는 점에서 가히 역사서의 백미편(白眉篇)이라 할 수 있다.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도합 34권으로, 1913년 고서간행회(古書刊行會)에서 도합 59권으로 각각 간행하였고, 34년 계유출판사(癸酉出版社)의 《조선야사전집(朝鮮野史全集)》에 일부가 국한문체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1966년 민족문화추진회(民族文化推進會)에서 《고전국역총서(古典國譯叢書》 제1집으로 도합 12권으로 발행하였다.

  현재 규장각에 원집 30책과 속집 19책으로 된 것과 별집 21책으로 된 필사본이 보관되어 있고, 철종대까지 서술하고 있어 고종대 이후에 어떤 사람이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성균관대학교에 최한기장서인(崔漢綺藏書印)이 찍혀 있는 것으로 총 38권 23책(원집 32권, 속집 6권) 및 총 41권 26책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52책본(원집 33권, 별집 19책), 연세대학교에 45책본과 32책본이 있는데 모두 원집과 속집으로 되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는 〈연려기요 燃藜記要〉라는, 목차와 내용이 아주 다른 별집 이본(異本)이 있다. 1968년 1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해서 출간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브리태니커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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